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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 못하는 외국인 아동...헌재 “법적 공백 방치는 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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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인 작성일26-08-28 14:05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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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아동의 출생등록을 국내 법률로 규정하지 않은 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국내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이 현행법상 근거가 없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건 기본권 침해라는 것이다.
헌재는 27일 베트남 국적인 A씨와 자녀가 국내 출생 외국인의 출생신고에 대한 규정이 없는 ‘입법 부작위’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입법 부작위는 입법 의무가 있는데도 국회가 법을 만들지 않아 공백 상태가 됐다는 뜻이다.
A씨는 같은 베트남 국적인 부인과 결혼해 2019년 국내에서 자녀를 낳았다. 두 사람은 2008년 비전문취업 체류 자격을 받아 입국한 이후 승인된 체류 기간을 넘겨 미등록 외국인이 된 상태였다. A씨는 국내에 자녀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한국 국적이 아닌 아동은 출생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씨는 법적 공백으로 자녀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2022년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될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지 않는 독자적 기본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아동이 사람으로서 인격을 자유로이 발현하고 부모·가족 등의 보호 하에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기본권”이라며 “해당 아동이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여부에 따라 보장 여부를 달리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대한민국법에 따른 출생등록이 가능하도록 그 권리의 구체적인 내용을 형성해야 할 국가의 입법 의무가 존재한다”고 했다.
헌재는 법적 공백으로 아동이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점도 우려했다. 헌재는 “아동이 출생등록으로부터 배제돼 우리나라에서 서류상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 상대적으로 학대 당하거나 유기되기 쉽고, 범죄에 노출되더라도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태어난 즉시 출생지 관할 국가가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기록해 주는 것은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고 했다.
아울러 헌재는 아동의 출생등록으로 인해 외국인 부모가 단속 등의 불이익을 입어서는 안 된다며, 접근성을 높이는 실질적 토대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헌재는 “아동의 출생등록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체류자격의 결여가 출생등록에 저해되거나 출입국관리법 등 위반 관련 단속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며 “외국인 부모가 출생등록 행정절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현실적 여건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1991년 아동이 출생 후 즉시 등록돼야 한다는 유엔(UN) 아동권리위원회의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위원회는 한국에 제도 마련을 권고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외국인아동의 출생등록에 관한 법률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2023년 감사원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간 국내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 아동의 규모를 4025명으로 추산했다.
카페 테이블 위에서 기저귀를 갈고, 영화관에서는 상영 중인 영화보다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데 더 분주하다. 비행기에서는 아이가 울자 내리겠다고 했다가 다시 타면서 수백 명의 승객을 기다리게 한다. 최근 잇따르는 육아 관련 논란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요즘 부모들은 정말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를 잊은 것일까.
최근 한 카페에서는 손님들이 가득한 가운데 여성 두 명이 아이의 기저귀를 테이블에서 갈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제보자는 음식과 음료를 주문해 놓고도 냄새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영화관에서는 갓난아기를 데려온 부부가 상영 중 분유를 먹이고 트림까지 시켰다는 목격담이 온라인에 퍼졌다.
비행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방송인 박수홍 가족은 지난 23일 인천에서 괌으로 향하는 항공편에서 아이가 울자 하차 의사를 밝혔다가 아이가 진정되자 이를 번복했다. 실제 항공기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수하물 처리 등이 진행되면서 출발이 약 1시간가량 지연됐다. 박수홍은 이후 승객들과 항공사에 사과했다.
세 사건은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카페에서 기저귀를 갈거나 영화관에서 아기를 돌보는 일이 법으로 금지된 행동은 아니다. 아이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나오는 것 자체도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내 아이에게 필요한 행동’과 ‘다른 사람에게 요구되는 배려’ 사이의 경계다.
아기는 배가 고프면 분유를 먹어야 하고, 기저귀가 젖으면 갈아야 한다. 울음을 참으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공간이 육아의 사적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카페의 테이블은 누군가에게는 식사를 하는 자리이고, 영화관은 다른 관객이 돈을 내고 조용히 영화를 보는 공간이다. 공공장소에서는 아이에게 필요한 일을 하더라도 그 방식과 장소를 조절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갈등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프랑스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긍정적 양육(éducation positive)’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졌다. 프랑스에서는 2010년대 들어 ‘긍정적 양육’이 빠르게 확산됐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체벌이나 강압 대신 대화와 공감을 중시하는 방식이다. 심리치료사 이자벨 필리오자와 소아과 의사 카트린 게겐 등이 대표적인 대중화 인물로 꼽힌다. 특히 필리오자는 아이의 행동을 단순히 ‘말썽’으로 보기보다 그 이면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프랑스 부모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2023년 필리오자를 조명하면서 그가 긍정적 양육의 원칙을 프랑스 사회에 널리 알린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동시에 이 같은 양육법이 부모 교육과 상담 시장으로 빠르게 확산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와 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커졌다고 짚었다.
긍정적 양육이 확산할수록 반론도 커졌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체벌을 피하는 원칙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지나치게 적용할 경우 부모가 아이에게 필요한 규칙과 한계를 설정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2022년 10월에는 아동·청소년 분야 전문가 300여 명이 르피가로에 공동 기고문을 내고 ‘긍정적 양육’이 하나의 양육 정답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비판했다. 이들은 아이에게는 애정과 존중뿐 아니라 분명한 규칙과 한계도 필요하다며, 부모가 아이의 모든 요구를 받아주는 것을 긍정적 양육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서 양육 논쟁이 흥미로운 이유는 한때 미국 부모들이 동경했던 ‘프랑스식 양육’의 이미지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식 양육은 오랫동안 아이에게 일정한 규칙과 자율성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해외에서 소개됐다. 미국 언론인 파멜라 드러커먼의 2012년 책 <프랑스 아이처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프랑스 내부에서는 이제 자신들의 양육 문화 역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르몽드는 최근의 논쟁을 다루면서 부모들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양육 정보를 접하고,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가’라는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부모를 위한 조언과 코칭 시장이 커졌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오늘날 일부 부모들의 공공장소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욕구를 이해하라는 메시지가 확산되면서, 이를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최대한 허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부모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 양육이 곧 방임이나 무례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양육법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아이를 존중하는 것과 규칙을 없애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강조한다.
프랑스에서 이 지점을 가장 강하게 문제 삼은 인물이 아동심리학자 카롤린 골드만 박사(임상·병리심리학)다. 그는 긍정적 양육의 본래 취지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고, 감정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교육적 한계’를 알려주는 것이 긍정적 양육의 본래 취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골드만은 프랑스에서 이 개념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그중 ‘경계’라는 요소가 빠져버렸다고 비판한다.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과 아이가 원하는 행동을 모두 허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는 실제 진료 현장에서 “지나치게 사랑받았지만 교육적 한계가 부족한” 아이들을 접하면서, 부모들이 아이에게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것 자체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내 아이니까 괜찮다’는 태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울면 달래줘야 하고, 배고프면 먹여야 하며, 불편하면 즉시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확장되면 ‘아이에게 필요한 것’과 ‘공공장소에서 허용되는 것’의 경계까지 흐려질 수 있다. 카페 테이블에서 기저귀를 갈거나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행동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행동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장소에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사람의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한국의 ‘무개념 육아’와 맞닿는 지점도 있다.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고 욕구를 이해하라는 메시지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경우, 아이에게 필요한 행동과 공공장소에서 허용되는 행동 사이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 테이블에서 기저귀를 갈거나 영화관에서 분유를 먹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긍정적 양육을 강조한 소아과 의사 카트린 게겐 역시 “비폭력 양육은 규칙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존중하되,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 역시 부모의 몫이다. 그러려면 부모부터 아이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아이에게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책임이지만, 그렇다고 그 행동을 카페 테이블이나 영화관 좌석처럼 타인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해야 할 권리까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회의 규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가 그 경계를 대신 지켜줘야 한다는 뜻이다. 골드만 박사 역시 긍정적 양육에 필요한 것은 사랑과 공감만이 아니라 ‘한계’라고 강조한다. 아이가 좌절을 경험하지 않도록 모든 불편을 대신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안 된다’고 말하고 그 이유를 알려주는 것도 양육이라는 것이다. 결국 아이에게 경계를 가르치는 일과 함께, 부모 스스로도 아이를 앞세워 그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 긍정적 양육의 출발점인지 모른다.
이경자의 연작소설집 <절반의 실패>(1988)는 1980년대 후반, 한국 문학계에서 여성주의 의식이 본격적으로 확산하던 시기에 가장 강력하고 급진적인 목소리를 낸 작품 중 하나다. <절반의 실패>가 출간된 1980년대 후반은 한국사회가 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시기였다. 사회 전반의 민주화는 자신의 권리를 말하고 주장하는 ‘시민’의 출현을 가져왔지만, 이 보편적인 시민의식은 여성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가정과 일터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부장적 규범과 보수적인 사회 구조는 여전히 견고했다. 작가는 다양한 계층과 학력, 다양한 사연을 지닌 여성들이 하나같이 고통받고 울부짖으며 집안의 천사가 아닌 노예 상태로, 최후의 식민지로 존재하고 있음을 생생한 날것의 리얼리즘으로 폭로하고 있다.
<절반의 실패> 초판본에는 총 12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으며, 작품마다 다루는 소재가 무엇인지 명시돼 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두 여자’(고부갈등), ‘안팎 곱사등이’(맞벌이 아내), ‘맷집과 허깨비’(폭력), ‘피의 환상’(남편의 외도), ‘치한의 사랑’(혼인빙자간음), ‘미역과 하나님’(매춘), ‘빈털터리’(성의 소외 1), ‘살아나는 시간’(성의 소외 2), ‘절반의 실패’(이혼), ‘둘남이’(빈민여성 1), ‘목숨앗이 1’(빈민여성 2), ‘목숨앗이 2’(빈민여성 3). 남편의 외도와 폭력, 고부갈등, 성매매, 혼인빙자간음, 성의 소외, 이혼, 하층 계급 여성의 현실까지 작품들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낸 갖가지 폐단을 고발한다. 각 단편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과 소외의 양태를 개별적으로 다룬 듯하지만, 이것들을 한 소설집에 담아내면서 계층, 학력, 지역, 연령의 차이를 초과하는 억압이 곳곳에 퍼져 있음을 강조한다. 작품이 다루는 소재들은 한국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 억압의 스펙트럼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여성에 대한 남성 폭력이 전 분야에 걸쳐 촘촘하게 행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적 배치를 통해 작가는 여성의 고통이 특정한 개인이나 사건에 한정된 예외가 아니라 성차별적인 사회 시스템의 결과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즉 수록작 전체가 198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젠더 질서를 고발하는 거대한 사회 보고서 또는 증언집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성매매 여성이나 혼인빙자간음을 다룬 작품들을 제외하고 이 연작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여성이 남성의 폭력에 노출되는 장소가 ‘집’이라는 사실이다. 한때 직업을 가지고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건, 학력도 돈도 없는 빈민 여성이건 이들은 소위 사회가 요구하는 여자다움, 아내다움을 수행하거나 연기해야 하고, 남편의 외도와 폭력, 무능력을 감내해야 한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공사 영역 분리가 명확해지면서, 여성에게는 가정의 관리자 역할, 양처이자 현모의 역할이 부과됐다. 여자다움은 이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다. 소설 곳곳에서 “결혼한 여자는 가정이 직장”이며, “아내란 남편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 “남편은 하늘”이며, “남자가 바깥만 파는 것”, 즉 외도를 하는 것은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에게 낯익은 장소인 집은 불안과 의심, 남편의 폭력이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감이 지배하는, 낯익지만 낯선 언캐니(uncanny)한 장소가 돼버렸다. 소설은 남편의 구타로 인해 멍들고 찢긴 몸, 알코올중독이나 트라우마로 병든 남편을 대신해 노동에 지친 거칠고 그로테스크한 몸을 계속 보여준다. 특히 하층 계급 여성의 현실을 소재로 한 ‘둘남이’, ‘목숨앗이 1’과 ‘목숨앗이 2’에서 여성의 몸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가부장적 폭력이 결합한 이중 억압의 비극적인 장소가 된다. 아내와 아이들은 남편·아버지의 욕설과 폭력에 짓눌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견디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다. ‘목숨앗이 1’에서 서술자는 “아버지와 가장이라는 이름은 그들 가족의 먹고 자고 서로 엇물려 사는 삶 자체에 마치 공기 같은 자연력으로 존재하였다”라고 말한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자연법처럼 작용하는 한국사회에서 이 여성들은 아감벤이 일찍이 말한 ‘호모 사케르’들이다. ‘둘남이’에서 남편의 구타로 죽은 둘남, ‘목숨앗이 2’에서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딸을 보고 분노해 항의하다가 “추악한 짐승 한 마리” 취급을 받으며 끌려나가는 수미 엄마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벌거벗은 생명, 즉 호모 사케르의 전형이다.
표제작인 ‘절반의 실패’는 소설집 전체의 주제의식을 응축하고 있다. 주인공 정순은 겉보기에 대학교수인 남편을 둔, 안정된 중산층 가정을 경영하는 전업주부지만 남편의 외도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의부증에 걸릴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결국 그는 주류 사회가 규정한 안정된 가정, 현모양처 역할, 경제적 풍요를 포기하고 이혼을 요구한다. 남편 기남은 자신의 외도를 ‘실수’로, 아내의 이혼 요구를 헛똑똑이의 ‘시건방진 짓’으로 치부하고 폭력까지 행사한다. 소설집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여성들이 비참한 상황에서도 결혼 유지를 선택한 것과 달리 ‘절반의 실패’의 정순은 이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1989년 가족법이 개정되기 전에 쓰인 이 소설에서 정순은 “굴욕적인 삶을 사절하는 값으로, 수태·임신·출산·양육에 대한 권능”, 즉 친권을 박탈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남편의 외도와 폭력을 용인하는 굴욕적인 삶이 ‘완전한 실패’라면, 이혼은 ‘절반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공이 현모양처 역할로 한정됐던 시대에 가정 밖에서 자신의 자율성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사회에서는 비규범적인 행위로 치부됐기에 정순의 선택은 ‘실패’다. 하지만 이 ‘실패’가 ‘절반’인 이유, 바꿔 말해 ‘절반’은 ‘성공’인 이유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완벽한 승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주권 권력에 유의미한 균열을 내고 주체적인 선택의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절반의 실패>를 여는 첫 번째 소설 ‘두 여자’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남성 폭력이 우세한 와중에 페미니즘 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1980년대의 상황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여자들은 자꾸만 생각이 바뀌는데 남자들은 그대로인 것 같아요. 남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여자 문제는 똑같다구요. 시부모 학대, 남편의 외도, 뭐 달라지는 게 없어요.” 작가는 지방의 여성 문제 상담 기관에서 간사로 일하는 후배의 입을 통해 젠더 폭력이 여전히 세습되고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임을 폭로한다. 페미니스트인 후배는 “가족제도의 발생에 대해, 남녀 불평등의 기원과 모계사회의 소멸 과정”에 대해 들려주지만, 배운 여자인 명희조차 이런 이론적 담론을 아직은 ‘비현실적’이라고 느낀다. 고부갈등을 그린 이 작품에서 며느리인 명희는 “결국 시어머니도 나와 똑같은 가련하고 고독한 여자”임을 깨닫는다. 자신을 괴롭힌 시어머니에게 느끼는 동질감은 페미니즘 ‘이론’은 아직 멀리 있고, 자신이 가부장제로부터 받은 피해를 같은 여성에게서 보상받으려는 ‘현실’은 가까이 있는 상황, 즉 이론과 현실의 낙폭을 자각한 데서 파생된 감정일 터이다. 남편이자 아들인 남성 가해자는 뒤로 물러나고 어머니와 아내 두 여자가 대리전을 치르는 구조적 모순을 어렴풋이 간파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경자는 2020년 <절반의 실패> 복간 즈음한 인터뷰에서 “당시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했던 남성과 여성의 삶의 방식에 일종의 ‘화염병’을 던진 작품이었다”라고 회고한다. 화염병의 뜨거움처럼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직설적이다. 작가는 여성 억압의 현실을 미화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여성의 정신과 몸을 피폐하게 하는 남성 폭력을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문체 전략을 구사한다. 이 소설이 지닌 정치성과 페미니즘 소설로서의 역사성은 소설이 제기하는 강력하고 급진적인 문제의식을 통해 독자들이 지금 오히려 미묘하고 진화된 형태로 작동하는 젠더 갈등의 근원을 역추적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첫 발간 후 30여 년이 지나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 여성 독자들에게 다시금 소환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김양선 한림대학교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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